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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질구리/잡학다식

왜 그들은 중소기업에 가지 않는가


윤철호 선문대 교수
지난달 취업을 준비하는 제자에게 한 중소기업을 소개했다가 '퇴짜'를 맞았다. 자동차 부품을 대기업에 납품하는 탄탄한 회사였는데, 제자는 그다지 달가워하지 않았다. 이유를 묻자 "결혼에 지장이 있을 수 있다"는 답이 돌아왔다. 중소기업을 기피하는 이유가 '월급이 적다'거나 '복리후생이 부족하다'는 것이 아니라 결혼 때문이라니…. 대기업·중소기업 상생(相生)이 큰 사회문제가 됐지만, 왜 한국의 젊은이들이 중소기업을 기피하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한가에 대한 고민은 논의에서 빠져 있다.

우리 중소기업의 경쟁력이 세계적인 수준에 비해 뒤처지는 이유는 자본, 기술력, 제도적 환경 등 여러 가지가 있다. 그중 가장 심각한 문제는 '우수 인재 부족' 현상이다. 2009년 교육과학기술부의 '과학기술통계백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상근 연구원 수는 18만명으로 세계 7위이다. 그런데 기업에 있는 연구원은 12만명으로 이들 중에서 대기업에 속한 연구원은 55%이고 중소기업 소속은 45%에 불과하다. 우리나라 대기업 수가 3000개 안팎이고 중소기업이 300만개 이상임을 감안하면 우수 인력 편중 현상이 얼마나 심각한지 알 수 있다.

중소기업 CEO(최고경영자)들을 만나면 "좋은 인재를 뽑고 싶은데 청년들이 오지를 않는다"고 하소연한다. 또 "어렵게 인재를 채용해서 써먹을 만하면 대기업에서 곶감 빼 먹듯 쏙쏙 빼간다"는 말도 한다. 경기도에 있는 한 중소기업의 경우, 거래 관계에 있는 대기업이 한 해 10명 이상의 인력을 빼내 가는데도 어쩔 수 없이 "가슴만 쳤다"는 얘기도 들었다.

우리 중소기업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선 실력 있는 청년들이 중소기업에서 열심히 일해주어야 한다. 일본 중소기업이 강한 것은 인재가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기왕 대기업·중소기업 상생을 강조하기로 했다면 이 문제를 해결할 정책도 나와야 한다.

중소기업에서 우수한 기술을 개발한 직원에게 파격적인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법이 있다. 정부가 지난해 기업의 연구개발(R&D) 지원을 위해 투입한 예산 1조5000억원의 대부분이 대기업 중심 컨소시엄에 돌아갔다고 한다. 이 예산의 10분의 1이라도 중소기업 연구원에게 인센티브로 지원한다면 성공을 꿈꾸는 젊은이들이 더 많이 중소기업에 도전할 것이다.

중소기업 병역 특례를 확대하는 방안을 신중히 검토해볼 필요도 있다. 정부가 미래 핵심기술 개발을 담당할 중소기업을 선정하고, 젊은 인재들이 중소기업에 가서 연구개발에 매진하도록 길을 터주는 것이다. 병역 특례가 확대되는 것이 바람직한가에 대해선 사회적 합의가 있어야겠지만, 병역 특례가 계속될 것이라면 중소기업을 지원하자는 것이다. 이 방법만으로 현재 5만명에 불과한 중소기업 상근연구원이 단기간에 10만명으로 확대될 수 있다.

젊은이들은 도전 정신을 가졌으면 한다. 미 하버드대 존 코터 교수가 1974년도 하버드 MBA 졸업생 115명의 졸업 후 진로를 추적했다. 졸업 20년 뒤에 보니 처음에 중소기업을 선택했던 청년들이 대기업 입사 청년들에 비해 승진이 빨랐고 연봉도 높았으며, 일에 대한 만족도도 훨씬 높았다고 한다. 수시로 기업이 흥망(興亡)하는 변화의 물결에서 도전정신으로 무장하고 다양한 업무를 섭렵한 중소기업 출신 인재들이 최종 승자가 된 것이다. 미국만의 사례일까. 청년들이 도전해 주어야 한국의 미래가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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