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 또한 정규과정의 역사교육을 받은 사람입니다.
많이 배우지는 않아도 한국사, 세계사 모두 승자에 의해 조작되어지는 것이란 것쯤은 알고 또 그렇게 우리가 배우는 역사입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베이스에 깔고 생각을 해야하는 부분이 아무리 강자가 강자의 기준에서 역사를 조작한다고 해도 그 조작을
뒤집을 증거가 나온다면 입장은 바뀌어져야 합니다.
통신사, 위안부, 동해.....그리고 러일 간의 쿠릴열도, 중일간의 조어도 분쟁등이 그렇습니다.
통신사라고 칭하는 것은 문화가 발달된 국가에서 덜 발달된 문화국가로 지금으로 치면 문화전파를 하는건데...
그걸 거꾸로 우기는건 .... 부끄러운 거죠.
과거에 문화가 덜 발달된 국가라서 부끄러운가요? 세상의 중심이 되고싶은가요? 그럼 뭔가요?
위안부 문제 ...
한국을 비롯한 당시 일본의 식민지배를 받던 국가가 겪었고 아직도 힘든 ...
잘못을 사과했는데 왜그러냐는 식의 생각과 돈을 뜯어낼려고 하는 짓이라는 등의 어의없는 생각은 자제하시길...
강제로 한 사람을 망쳐놓고 사과는 하지만 몇일 뒤 혹은 시간이 지나서 총리가 바뀌면 또 반대로 뒤집고, 신사참배를 강행하는 등
타국을 조롱하는 행위는 뭔가요? 이러니까 더 화가 나는 거죠.
타국으로 끌려가 짐승보다 못한 취급 당한 그런분들께 그리고 그렇게 버려지고 죽음을 맞으신 분께 모욕을 주는 행위는 안하는게
당연한게 아닐까요? 그러고도 시위하는 힘없는 피해자들이 억지를 부리는 건가요?
동해와 독도 문제는 좀 심각하게 고려할 문제입니다.
한 국가의 영토를 침해하는 즉 주권을 침해하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돈으로 조어도와 독도를 사신다구요? 어이없음.
~해, ~해를 칭하는 것은 섬이 기준이 아니라 대륙이 기준입니다. 독도...식민지배가 끝나면 당연히 본국으로 돌아가는게
정상이고, 역사적 자료와 고지도를 보더라도 똑같은 겁니다.
일본의 역사학자와 교육자들은 21세기인 지금 아직도 19세기 일본에 살고계신가요?
아니면 정치적으로 이용하게 방관하는 건가요? 가슴에 손을 얻고 생각해보세요.
당신의 아들 혹은 손자, 손녀는 당신을 부끄러워 할 것입니다. 쿠릴열도, 조어도 또한 동일한 이유에서
당신들은 접근할 권한이 없습니다.
사실을 왜곡하면 할수록 거짓은 더 늘어가게 마련입니다. 지금이라도 솔직히 고백하면 혼내지는 않을 것입니다.
강대국이라구요???선진국이라구요??? 머릿속을 들여다보니 고대 로마가 그렇듯 서서히 가라앉고 있습니다.
日 지배설 뒤집을 '결정적 증거' 찾았다
고분은 말한다, 임나일본부설은 허구
순천 운평리 무덤 출토 200여점 대가야계 지배층 유물로 확인. 일본이 주장하는 임나 영역서 일본계 유물은 하나도 안 나와.
전남 순천의 운평리 고분군에서 일본의 임나일본부설(任那日本府說)의 허구를 입증하는 유물이 대거 출토됐다. 일부 일본학자들이 주장해 온 임나사현(任那四縣) 지역에서 대가야계 유물만 출토되고 일본계 유물은 전혀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순천대학교 박물관(관장 강성호)은 순천시 서면의 운평리 고분군에 대한 3차 발굴조사를 통해 가야계 고총고분 2기에서 대가야계 유물 200여 점을 발굴했다고 20일 밝혔다. 발굴된 순금제이식(純金製耳飾·귀걸이), 마구류(馬具類), 대도(大刀), 꺽쇠, 토기류, 옥 등은 대부분 6세기께 대가야계의 유물로 확인됐다. 호남 동부를 비롯한 가야 지역을 일본이 지배했다는 임나일본부설이 후대에 조작됐음을 확인해 주는 결정적인 증거들이다.
운평리 고분군은 일본이 주장해 온 임나 4개 현(縣) 중 하나인 사타(沙陀·순천의 옛 지명)에 속해 있다. 전남 동부 지역에서는 유일하게 고총(古塚·무덤)이 남아 있는 가야계 고분군으로 2006년과 2008년에 이어 세 번째 발굴이 이뤄졌다. 이번에 발굴된 고총은 백제가 전남 동부권을 장악하기 직전인 서기 500년 무렵 순천 지역 지배층의 무덤으로 확인됐다. 경북대 박천수 교수는 “이번 발굴은 임나일본부가 영산강 유역까지 뻗쳐 있었다는 일부 일본 학자의 주장을 정면으로 뒤집는 결과”라며 “이들의 주장대로라면 일본 상류층과 잦은 교류를 했을 ‘사타’의 지배층 무덤에서 일본의 유물이 전혀 발견되지 않은 것은 이들의 주장이 허구임을 보여주는 결정적인 증거”라고 말했다.
그동안 국내 고대(古代) 사학계에서는 ‘임나사현’을 대가야의 영역인 전남 순천·광양·여수로 봐왔다. 따라서 순천대의 이번 발굴은 국내 사학계의 견해를 고고학적으로 증명하는 성과를 남겼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동희 순천대 학예연구실장은 “운평리 발굴을 통해 일본이 주장해 온 임나사현이 대가야의 연맹체인 4개 고을이었음이 밝혀졌다”며 “4년여에 걸친 발굴로 임나사현의 위치와 내용이 조작됐음을 증명하는 성과를 남겼다”고 말했다. 순천시는 이날 자문회의를 열어 운평리 유적에 대한 국가지정문화재 지정을 신청하기로 결정했다.
◆임나일본부설=4세기 중엽∼6세기 중엽 일본 야마토(大和) 정권이 한반도 남부 지역에 진출해 백제·신라·가야를 지배했다는 주장. 『일본서기(日本書紀)』의 6세기 초 기록에 나온 ‘임나사현을 백제에 할양했다’는 내용을 토대로 한 일본의 대표적인 역사 왜곡 중 하나다.